30년 가까이 몬스터를 모으고 길들여온 개발사가 포켓몬 시리즈 바깥에서 내놓는 첫 AAA 타이틀, 게임프리크(Game Freak)의 신작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Beast of Reincarnation)' 이야기다. 자체 기획으로 만들어 낸 신규 IP로 4026년, 역병에 잠식된 종말 이후의 일본에서 식물을 다루는 봉인자 소녀 '엠마'와 반려견 '쿠'가 한 몸처럼 싸우며 모든 재앙의 근원 '윤회의 짐승'을 쫓는다.

포켓몬을 만들던 회사가 처음으로 칼을 휘두르는 액션 RPG를 만들었다고 하니 기대만큼 불안도 컸다. 게다가 '엠마'의 검을 이용한 액션과 '쿠'의 커맨드형 지원을 얹은 실험적인 전투 구조도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는 요소였다. 과연,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은 자신들의 특징을 살린 게임을 만들어 냈을까?

빌리빌리 퍼스트룩 현장에서 약 2시간 동안 시연 빌드를 직접 플레이했다. PC에 Xbox 패드를 연결했고, 영어 자막에 일본어 음성 구성이었다. 튜토리얼로 시작해 필드로 나간 뒤 다시 튜토리얼을 거치고, 필드에서 보스를 잡은 다음 또 한 번 필드를 누비다 마을에서 보스를 만나는 데까지가 체험 분량이었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빠르고 경쾌한 '엠마'의 칼, 그러나...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개와 함께 싸우는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만의 독특한 시스템 ©INVEN

먼저 이 게임이 전투를 어떻게 굴리는지부터 짚어야겠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의 전투는 엠마와 쿠, 두 축이 동시에 돌아간다. 엠마는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쪽이다. 카타나로 베고, 구르고, 패링하는 실시간 액션 전부가 엠마의 몫이다. 반면 쿠는 직접 뛰어다니며 싸우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커맨드 메뉴를 열어 스킬을 골라 발동시키는 식으로 움직인다. 턴제 RPG의 커맨드 입력을 실시간 액션 한가운데 끼워 넣었다고 보면 얼추 맞다.

둘을 잇는 고리가 패링이다. 엠마가 적의 공격을 패링하면 포인트가 쌓이고, 이 포인트를 소모해 쿠의 스킬을 꺼내는 구조다. 즉 엠마로 잘 받아쳐야 쿠가 일할 자원이 생기고, 쿠의 스킬로 다시 엠마의 빈틈을 메우는, 서로 물고 물리는 설계다. 검을 휘두르는 손과 개를 부리는 손이 따로 놀지 않게끔 묶어둔 셈이다. 적어도 기획 의도는 그렇다. 그래서 이 게임은 엠마의 액션, 쿠의 커맨드, 둘을 잇는 패링까지 세 갈래를 함께 봐야 한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엠마'가 공격하고 동반자 '쿠'가 전투를 돕는다©INVEN

결론부터 말하면, 칼은 합격이다. 엠마의 카타나 액션은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빠르며 가볍다. 날렵하다는 인상이 강한데, 재미있는 건 같은 검인데도 상황마다 무게가 다르게 실린다는 점이다. 일반 공격을 휘두를 땐 산뜻하게 베고 지나가는 느낌인데, 적의 등 뒤에서 암살을 꽂을 땐 손맛이 묵직하게 온다. 검 하나만 놓고 보면 게임프리크가 액션 게임을 처음으로 만든 게 맞나 싶을 만큼 잘 빠졌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물 흐르듯이 유려하게, 바람처럼 경쾌하게 ©INVEN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결정타를 날린 때에는 임팩트 있는 연출을 보여준다 ©INVEN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되는 검활극 ©INVEN

패링도 비중이 크다. 이 게임은 패링을 못 하면 진행이 안 된다고 봐도 될 정도인데, 다행히 판정은 관대한 편이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초반 구간까지는 리듬이 정박 위주라 타이밍을 읽기 어렵지 않았다. 손을 빡빡하게 옥죄기보다 받아칠 틈을 넉넉히 주는 쪽이다. '세키로'처럼 칼날 같은 리듬을 요구하는 패링을 떠올렸다면, 그보단 한결 너그럽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상당히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패링 장면 ©INVEN

위의 패링 장면은 이 게임에서 패링이 가진 다양한 정보를 한 번에 보여준다. 먼저, 첫 번째로 공격 중에 패링이 가능했고, 상대 공격이 닿기 바로 직전에 패링 버튼이 눌렸는데 성공 판정을 해줬다. 반면, 두 번째 패링은 상대 칼이 닿기도 전에 패링 버튼이 눌렸고, 상당히 이른 타이밍인데도 패링이 가능했다. 두 번의 패링 동안 ① '쿠'의 기력이 차올랐고, ② 상대가 패링 만으로 그로기 상태가 됐다. '패링'에 대한 판정은 이 정도로 널널하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쿠'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다 몬스터 공격 모션을 놓쳤다 ©INVEN

문제는 '쿠'다. 이 게임의 전투는 '엠마'가 빠르게 적을 몰아치다가 중간중간 '쿠'의 커맨드를 꺼내 스킬을 발동하는 구조다. 개발진은 반사신경에만 기대지 않고 잠깐 멈춰 전술을 짜는 '템포의 완급 조절'을 노렸다는데, 의도는 알겠으나 손이 따라주질 않았다. 경쾌하게 달리던 전투가 커맨드 메뉴를 여는 순간 뚝 멎는다. 흐름이 끊긴다.

액션 도중 잠깐 멈춰 뭔가를 고르는 게임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게임들은 어쩌다 한 번, 특정 상황에서만 멈춘다. 반면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은 쿠가 주인공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그 멈춤을 자주 반복해야 한다. 빈도가 잦은 만큼 끊김도 잦다는 뜻이다. 결국 엠마와 쿠가 "한 몸처럼" 맞물린다는 합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다. 손이 안 가니 연계를 느낄 기회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이번 시연의 숙제 절반은 풀고, 절반은 물음표로 남겨둔 기분이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원거리 무기에 명중 보정이 넉넉하게 들어가고 있다©INVEN

원거리 무기는 철저히 보조 수단이었다. 가볍게 잘 날아가지만 타격감이 박히는 맛은 없다. 대신 이 게임은 보스 덩치가 워낙 커서 칼이 안 닿는 순간이 종종 생기는데, 그럴 때 체력을 야금야금 깎는 용도로는 알차게 썼다. 식물 능력은 두 갈래로 맛봤다. 하나는 점프 도중 한 번 더 솟구치는 이중 점프, 다른 하나는 특정 지점에 식물을 던져 그쪽으로 날아가는 로프 액션이다. '배트맨: 아캄' 시리즈의 그 이동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공중에 식물로 길을 까는 기능도 있었는데, 튜토리얼 지나고 나선 그런 게 있었다는 것조차 까먹고 안 쓰게 됐다.


집채만한 보스의 공격을 검 하나로 튕기는 초인 '엠마'


시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보스전이었다. 처음 맞붙은 건 사슴을 닮은 '랑기페르(Rangifer)'. 화면을 가득 채우는 덩치에 비하면 패턴은 의외로 정직했다. 뿔로 한 번 찍고, 휘둘러서 두 번 치고, 멀찍이 뛰어갔다 돌아와 다시 뿔을 두 번 휘두른 뒤 한 번 더 내려찍는 게 전부다. 읽고 피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한 차례 울부짖으며 몸이 붉게 달아오르면 2페이즈인데, 이때부터 돌을 던지는 등 원거리 패턴이 붙어 거리를 좁히는 맛이 생긴다. 그래도 초반 보스다운 난이도를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거대한 보스 'Rangifer' ©INVEN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거대한 뿔로 공격한다. 생각보다 공격은 단조롭다 ©INVEN

과거 회상에서 만난 '누에(Nue)'는 결이 좀 달랐다. 강아지 몸에 연꽃처럼 피어난 머리를 얹은, 한눈에도 기괴한 비주얼의 부식몬이다. 앞발을 휘두르고 꼬리로 두 번 치는 근접 패턴이야 받아칠 만한데, 포효와 함께 번개를 떨어뜨리는 공격이 제법 까다로웠다. 근거리와 원거리 모두에서 공격이 들어오지만, 난이도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두 번째로 마주하는 보스 '누에(Nue Malfact) ©INVEN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두 번의 꼬리 공격과 ©INVEN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번개를 소환하는 공격이 핵심이다 ©INVEN

두 번의 보스전을 치르면서 거대한 보스 몬스터가 검 액션의 상대로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엠마'가 집채만 한 보스들의 공격을 검 한 자루로 쉽게 패링하는 모습이 꽤 이질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본래 인간과 인간의 대결을 토대로 발전한 것이 검술이다 보니, 거대한 괴수와의 사투에 이를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시각적으로 그리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보스보다 어렵게 느꼈던 건 잡몹들이다. 초반 단계에 나오는 일반 몬스터 중 곰처럼 생긴 녀석이 특히 고약했다. 빠르게 두 번 휘두르고는, 같은 박자로 한 대 더 들어올 줄 알았던 다음 타를 한 박자 늦춰 엇박으로 꽂는다. 보스들의 공격은 정박으로만 이뤄졌는데, 정작 일반 몬스터가 엇박과 변칙 공격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래서 보스보다 잡몹이 더 무섭다는 인상이 남았다.

조작 적응 자체는 빨랐다. 주인공을 움직이는 건 처음 잠깐 어색했던 부분도 한 번 겪고 나면 곧 손에 익었다. 끝까지 안 익은 건 역시 '쿠'뿐이다. UI는 군더더기 없이 직관적이라 보자마자 바로 들어왔고, 약 2시간을 돌리는 동안 프레임 드랍이나 끊김은 없었다. 로딩이나 버그로 거슬린 적도 없다. 적어도 기술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흠잡을 데가 없는 빌드였다.


액션에 비해서, 다소 몰입도가 떨어지는 스토리


게임 초반부 서사의 시점 변환은 다소 난해하게 다가온다. 게임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모든 스킬이 개방된 성장한 '엠마'로 튜토리얼을 진행하지만, 이후 시점은 다시 '쿠'와 모험을 떠나는 과거로, 그리고 둘이 처음 조우하던 더 먼 과거로 연이어 회귀한다.

단조로울 수 있는 초반부에 강렬한 임팩트를 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잦은 시점 이동 탓에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성장한 캐릭터로 튜토리얼을 마친 후, 다시 과거로 돌아가 튜토리얼 성격의 플레이를 반복하는 구조 역시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아쉽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 직후 과거 회상으로 넘어가 사연을 보여주는 구조가 반복되다 보니, 경쾌하게 몰아치던 전투의 흐름이 자꾸만 브레이크를 밟듯 끊긴다. 한창 달아오른 전투 템포가 회상 연출에서 식어버리는 순간이 적지 않으며, 연이어 등장하는 컷신 역시 인상적인 각인을 남기지 못한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게임 극초반부 튜토리얼, 머리에 만개한 꽃은 완성된 '엠마'를 표현한다 ©INVEN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10분 튜토리얼이 끝난 후, 5개월 전 시점. '엠마'와 '쿠'가 함께 여행하는 중이다 ©INVEN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 Beast of Reincarnation
플레이 타임 40분, '엠마'와 '쿠'가 만나기 전 시점으로 또 다시 회귀해 있다 ©INVEN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이어졌다. 서사를 제외한 요소들이 독창적인 세계관 속에 훌륭하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계 장치로 이루어진 인간형 몬스터와 식물의 저주를 받아 기괴하게 변한 괴수들의 개성 넘치는 디자인, 그리고 곳곳에서 묻어나는 특유의 일본풍 배경은 흡사 지브리의 명작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감각적인 미장센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황폐한 세계관 속에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출시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쿠'와 늑대의 시간


황혼이 저물고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모호한 타이밍. 우리는 이 시기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약 2시간의 시연을 통해 마주한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의 현재 모습이 딱 그러했다. 이 게임이 앞으로 유저들에게 환영받는 '개'가 될지, 혹은 외면받는 '늑대'가 될지는 아직 명확하게 분간하기 어렵다. 그만큼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스트 오브 리인카네이션'은 오는 8월 4일 PS5, PC, Xbox 시리즈로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이 짧고도 긴 시간 동안 개발진은 시연을 통해 얻은 다양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호평받은 부분은 더욱 날카롭게 다듬고 지적받은 아쉬운 점들은 쉴 틈 없이 보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어디까지나 이번 시연은 핸즈온 수준의 빌드였던 만큼, 이 빌드 하나만으로 최종 완성도를 단정하기엔 이르다. 정식 발매 이후 플레이어들이 시스템에 온전히 익숙해졌을 때 느낄 깊이감이나, 서사를 끝까지 감상한 뒤의 감정은 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를 연상시키는 수려한 미장센과 기본기가 탄탄한 카타나 액션 등 유저를 사로잡을 매력적인 토대는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다가오는 8월, 남은 한 달의 시간을 밀도 있게 활용해 한층 더 완성도 높은 명작으로 다시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